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 수학, 읽기, 과학 부문 학업성취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교육부는 현지 시간으로 3일 오전 11시(프랑스 현지 시간, 한국 시간 오후 6시) OECD가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OECD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PISA) 2012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고 전했다. PISA는 만 15세 학생들의 수학, 읽기, 과학 소양 수준과 추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하고 교육맥락변인과 성취도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3년 주기로 시행된다.
PISA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가입 34개국 중에서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하여 평가의 대상이 된 전체 65개국 중에서는 수학 3~5위, 읽기 3~5위, 과학 5~8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PISA 2012는 총 65개국 5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우리나라의 표본 수집 대상이 된 학생은 총 5,201명이었다. 조사 주기별로는 읽기, 수학, 과학 순으로 주 영역이 설정되며 PISA 2012의 주 영역은 수학이었다.
수치만 놓고 보았을 때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상 수준이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교육제도는 지나치게 주입식 교육 위주이며 강압적인 요소가 많다는 등의 부정적 의견들이 있지만 그러한 부정적인 의견들을 차치하고 일단 이 결과는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분야든 세계에서 최고가 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전을 뒤집어보니...>
우리나라가 극강의 학업성취도를 자랑한다는 자료를 올해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다. 몇 해 전부터 국제적으로 조사를 해보면 우리나라의 학업성취도는 늘 상위권에 랭크되곤 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학업성취도 그 이면에는 생각보다 어두운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공부를 하는 당사자들의 행복이 굉장히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수학에 대한 흥미나 만족도' 결과이다. OECD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나 만족도는 65개국 가운데 58위였고 수학에 대한 필요성 인식 측면도 세계 최하위원이었다. 지난 2003년 수학 조사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었는데 그 이후로 별로 나아진 점이 없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꼴찌로 나타났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방정환재단이 공동으로 2012년 3~4월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5,437명에게 설문조사를 벌여 유니세프 2006년 연구와 비교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 삶에 만족하는가 라는 질문에 53.9%만 그렇다고 대답해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였다. 학생 2명 중 1명은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한 것과 같은 셈이다. 같은 질문에 네덜란드 학생은 94.2%가 만족한다고 대답한 것에 비해 40.3%가 낮았고 OECD 평균보다는 30.9% 낮았다. 이는 2010년 조사한 한국 청소년의 삶 만족도 55.5%보다도 1.6% 더 낮아진 것이다. 삶의 만족도라는 것은 학업 성취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진 않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삶이 공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공부라는 것이 그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는 청소년의 74.1%가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 38.3%, 친구 관계 스트레스 14.2%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즉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청소년의 20% 정도는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으며 우울증 증세는 학업성적이 낮거나 경제수준이 어려울 수록 더 심하게 나타났다.
제법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화려한 성과 뒤에는 이렇게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과연 학생들은 스트레스 없이, 부담감 없이, 고통 없이 높은 성취도를 달성할 수는 없는 걸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취도와 만족도는 왜 반비례하게 된걸까>
먼저 우리나라는 '시험' 이라는 대상이 삶에 굉장히 광범위한 영향을 준다.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행해지는 사소한 쪽지 시험부터 수능, 사법시험, 그리고 취직에 사용되는 각종 평가들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험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 다양한 시험이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결과를 토대로 우리를 평가하고 판단하기에 사람들은 시험 앞에서 한 없이 약해지고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학생들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모의고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험들을 성인이 되기 훨씬 전부터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결과를 확인하고 끝나면 다행이지만 성적이 공개되고 서로 비교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부담감을 갖게 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이어져 많은 고통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부분에 순위를 메기고 그 순위를 바탕으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그릇된 의식이 팽배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줄세우기식' 교육이다. 이런 교육 방식이 등장한 배경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 급격한 사회, 경제적 발전 속에서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펼치며 발전의 방향보다는 속도에 초점을 맞추며 발전해왔다. 그 과정에서 남들보다 먼저 앞서가려는 욕심과 남을 이기려는 경쟁심이 생겨났고 그런 요소들이 실제로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런 의식과 제도에만 의존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 (사진) 학벌지상주의를 비파난 캘리그라피 - <출처 : 캘리그라피 작가 진성영 씨의 작품>
학벌주의가 이에 부합하는 가장 적절한 사례일 것이다. 학생들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목적 의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그저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생존을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위해 좋은 대학을 좇는다. 이런 가운데 실제로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일수록 실력이 있고 그로 인해 대학과 국가도 경쟁력을 갖게 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험을 잘 보는 학생과 못 보는 학생의 차이는 시험을 보고 난 후에 까먹는 것과 시험을 보기 전에 까먹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로 그 차이는 크지 않다. 우리나라의 시험 수준은 창의적인 해결 과정이나 가능한 여러 대안들을 고려하는 과정은 무시한 채 답이라는 단편적인 결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생산적이지도 않으면서 고통스럽기만 한 경쟁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자>
이런 현실과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청소년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을 국정 목표로 교육 본질에 충실한 교육과정, 인성교육 중심의 수업과 개인 맞춤형 진로교육을 통해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는 행복교육으로의 전환을 추진전략으로 계획하였다. 그 외에도 이와는 크게 관련은 없지만 청소년들의 안전이나 권익을 위한 정책도 추진하는 등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해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학벌 사회, 대학 서열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입시 중심 교육이 공교육을 왜곡, 황폐화 시키고 사교육비를 무한 증가시키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은 죽음으로 이어져 2008년 이후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일 정도이다. 청소년이 꿈꾸는 세상 만들기의 첫걸음은 근본적으로 일상에 침투한 '경쟁의 문화' 를 넘어서서 '협력' 의 문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는 초중고의 과도한 입시 경쟁 교육을 혁신하여 공교육을 내실화 하고, 모든 영역에서 협력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주체를 키워내려는 협력 중심 교육이 필요하다.
내가 고3이었던 시절에는 선생님이나 주변으로부터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었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자신을 자극하는 문구나 다독이는 말들을 외워가며 마음을 부여잡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대의 중, 고등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반대의 말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 이루고 싶지도 않은, 남에 의해서 생성된 꿈을 위해 책상 앞에 앉기 보다는 진정한 꿈을 꾸기 위해 잠시라도 눈을 감아도 된다는 위로의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들을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는 현실이 완고하게 버티고 있지만, 언젠가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다가와 줄 세상이 올 수도 있을거라는 희망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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