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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ing/시사 이야기

공기업 개혁 시작부터 '삐걱'

이른바 '신의 직장' 이라 불리며 취업 시즌이면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하는 공기업이 얼마 전 막대한 부채와 관련하여 도마 위에 올랐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686개 공공기관의 총 부채가 지난해 말 566조 원으로 국가채무보다 120조 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정부가 주요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12개 공기업의 2012년 부채 총액은 412조 원을 넘어서 무려 전체 부채의 84% 가량을 차지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 등 정부 부처와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공기관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토론회' 를 개최하였고 그 곳에서 '공기업 정상화 대책' 이란 이름으로 공기업을 뜯어 고쳐보겠다는 각오와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과거부터 높은 연봉과 복지, 근속연수, 일하기 좋은 근무환경을 자랑하며 신의 직장으로 불리어왔던 공기업이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골칫거리를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막대한 부채를 향해 날카로운 개혁의 칼날을 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대대적인 '공기업 수리 작업' 을 실행하기에 앞서 시작 단계부터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비정상화의 정상화' 를 부르짖으며 기업의 최고경영자에 대한 책임 묻기, 경영의 자율화, 기업의 탈정치화 등을 내걸고 개혁의 목소리를 힘껏 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인사문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사실 개혁의 핵심은 '인사' 문제이다. 기업은 사람들이 운영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 문제가 있다면 외부적인 요인도 물론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내부의 사람들에게서 원인을 찾게 된다. 가장 큰 책임은 한 기업의 수장이 지고 있으므로 개혁의 핵심은 책임을 지고 있는 수장들을 갈아치우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최근 공기업들의 인사를 보면 공기업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릴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들이 이어지고 있다.

 

12월 초에는 친박 핵심인 현명관 삼성물산 전 회장을 한국마사회 회장에 임명했고 3선의 친박계 김학송 전 의원도 도로공사 차기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한 공공기관의 '2인자' 로 불리는 상임감사 자리에도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줄줄이 내려오고 있다. 지난 달 말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 중부발전, 서부발전, 동서발전, 광물자원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등 10여개 대형 공기업들에서 상임감사 선임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중부발전에는 구자훈 (주)한길 파미힐스컨트리클럽 공동대표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발전 자회사인 서부발전에는 이송규 전 대한기술사회 회장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 상임이사로는 안홍렬 변호사가 선임됐다. 위의 인사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박근혜 캠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었거나 새누리당 활동에 깊게 관여한 적이 있는 등 정치권에 몸담아 왔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상임감사는 공공기관 임원 가운데서도 가장 정치색이 짙은 자리로 보통 정권 공신들의 '논공행상용' 으로 쓰여 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박대통령이 대선 승리 직후 12월 25일에 '최근 공기업, 공기관에 전문성 없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은데 잘못된 일' 이라고 지적했던 일을 떠올렸을 때 일관성과 진정성이 결여된 행보이며 최근 그토록 주장하는 공기업 개혁에도 반하는 일이다.
박대통령이 내년 1월 공공기관장들을 소집할 예정이고 최근에도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줄줄이 공공기관장들의 소극적인 개혁 노력을 질타하는 가운데 정작 이를 주도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개혁의 핵심인 낙하산을 근절하기는 커녕 이를 방관하거나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공기업 개혁의 헛걸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기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부채인데, 부채가 그렇게 많아진 원인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합적이지만 대략적으로 짚어보면 국가와 연계된 무리한 국책사업, 한국가스공사의 경우처럼 과도한 복지혜택과 성과금, 그리고 방만한 경영 등이 있다.

 


- (사진) 주요 공기업 부채 현황 -


공공요금 인상 억제와 같은 정책적인 이유로 인해 탄력적인 가격 관리 및 매출 증대가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정부의 영향력으로 대규모 국책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지게 되는 적자 등의 외부적인 요인은 단 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이다. 대규모 국책 사업의 경우 사업 타당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거를 하면서 내놓은 공약을 지켜야겠다며 정부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결과로 인한 것으로 이는 공기업만의 책임은 아니다. 정부 사업은 경제 타당성이 대부분 낮은 경우가 많다. 특히 무리한 공약사업은 경제성이 거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공약을 공기업을 통해 해결해 온 것은 분명 정부의 잘못이지만, 공기업도 잘못이 크다. 공기업들은 그런 사업들이 마치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추진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경영진의 방만하 경영 실태나 지나친 복지제도 등의 내부적인 문제는 냉정한 태도로 접근만 한다면 얼마든지 날카로운 개혁의 칼을 댈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주 등장했던 공기업 민영화 등을 습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지양하고 보다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꺼내어 해결해야 한다.

가령 정부는 11일 공기업의 과도한 부채를 줄이고 방만한 경영을 해소하기 위한 '공공 기관 정상화 대책' 을 내놓았다. 국민은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기회만 되면 공기업 경영 혁신을 강조해왔기에 이번에는 공기업 혁신의 계기가 될 무언가가 들어있으리라고 예상하며 기다려왔다. 발표한 계획들은 다음과 같다. 공공기관이 스스로 부채감축계획을 세운 후 자구노력을 전제로 정책을 마련하여 경영평가를 통해 부채감축계획이 이행되도록 관리한다는 것이다. 또한 과도한 복리후생과 같은 방만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기관장은 주무부처와 경영성과 협약을 체결하고, 기타 공공기관의 기관장도 이에 준하는 협약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는 시정이 필요한 과도한 복리후생 사례를 유형화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속이 없다. 공기업 사장의 연봉을 4분의 1정도 삭감한다는 걸 제외하고는 예전 개혁안들을 그대로 복사하여 붙여넣기 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직원 복리후생비가 높은 20개 기관들과 부채가 많은 12개 기관을 중점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위에서 얘기한 방안들은 사실 개략적인 '큰 그림' 을 제시한 것일 뿐 흠집이 난 부분을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메꿀 것인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책임의 주체를 정하고 그 책임의 프로세스를 규정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 문제점에 해당하는 구체적이며 상세한 방안이 필요하다.

 


- (사진) 우리나라의 수많은 공기업 목록 -

 

현재 공기업은 그들이 안고 있는 과도한 복지 혜택과 같은 문제점들이 오히려 수많은 구직자들에게는 '좋은 근무 요건' 으로 비쳐져 갈 수록 입사 경쟁률은 높아지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현실이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기가 어려운 탓에 보다 더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은 직장을 찾으려는 구직자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런 상황 역시 이해할 수 있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 심리를 흔드는 건 적절하지 않다.

세계 경제가 어렵고 나라 안팎의 상황이 불안정할 수록 예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기업 부채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배고픈 건 참아도 남이 배부른 건 못 참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냉철한 시각을 유지해야 하고 감정의 개입으로 인해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공기업이 들어가고 싶은 직장이 되는 것은 좋고 나쁨을 따질 일이 아니지만, 그 이유들은 제법 중요하다. 그 이유들을 바람직하게 바꿔나가며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사회 공공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경영하는 기업' 이라는 공기업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이 정부의 숙제가 될 것이다.